피어나라 퀴어나라 후기

내가 살면서 퀴어문화축제도 가보고 정말 별 일이라고 생각했다. 2018년 정도에 처음으로 라벨을 붙인 뒤 그동안 퀴어퍼레이드 날마다 일하거나 바빠서 가지 못했다가 지금에서야 겨우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으레 서울 퀴어 문화 축제날은 여름이라는 특성 상 비가 많이 오거나 햇빛이 쨍쨍 비추기 마련인데, 한 주 내내 비가 오거나 날씨가 흐렸음에도 거짓말처럼 토요일에는 폭염경보가 발령됐다.

아침에 치과 치료 때문에 짜증이 많이 났음에도, 경복궁에서 을지로까지 걸어가면서 본 보수 기독교의 행사가 초라해서 이럴꺼면 서울시청 광장 사용 허락을 해주지 라는 생각이 들었음에도 을지로에 도착하자마자 꽤나 감동스러웠다. 아 여기가 그 무지갯놈들 명절이죠? 같은 느낌이었다.

도착하고 나서 나는 내가 옷을 잘못 선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셔츠는 땀이 나면 제법 눈에 잘 띄는 옷인게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그 길로 바로 서울 퀴어 문화축제 공식 기념품 부스로 가서 티셔츠를 하나 샀다. 그 길로 나와 연이 있었던 몇몇 부스들에게 후원을 했고, 본격적으로 부스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사실 원래는 조용히 다니려고 했지만, 뭐 어쩔 수 있다. 사람이라는게 아는 사람을 찾기 마련인 것을, 그래서 올 것 같은 사람, 왔다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서 오랜만에 만났으니 간단한 안부 인사도 하고 부스도 돌아보면서 오후 내내 땡볕을 돌아다니게 되었다.

어느 덧 시간은 행진할 때가 되었고, 나는 행진하면 사람이 빠졌을테니 부스 도우미로 왔던 친구 얼굴 좀 볼까 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생각해보니 또 언제 이런 행사를 올지 모르는데 못 가면 후회하지 않을까 란 생각이 들어서 고민하였다. 고민 하던 중에 친구가 우리야 워낙 많이 왔으니 안 가는 거고, 언제 올지 모르면 가는게 낫다. 이렇게 해 떠있을 때 행진하는거 꽤나 귀한 기회다 라고 등떠밀려 행진을 가게 되었다.

그래서 조선 레즈 차량 뒤에 붙어서 행진을 하게 됐는데 무척이나 신기하더라, 보수 기독교의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따라 부르는 것도 그렇고, 다들 어쩜 그렇게 KPOP 노래와 안무를 잘 아세요? 라는 느낌이 든 것도 그렇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것, 경찰이 통제 하는 것, 스태프가 ‘선생님들 우리 오래 살려면 오른쪽으로 들어가주세요’ 하면서 사람들을 차도로 튀어나오지 않게 하는 것, 그냥 그 모든 것들이 신기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어쩌면 입에 늘 붙이고 다녔던 느슨한 연대와 환대는 이런게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더위에 이쁘게 절여진 것마저 아름답다고 느꼈을 정도로 말이다.

퀴어라는 이름 아래에도 무척이나 다양한 맥락과 경험이 있기에 전부 하나로 묶일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경험 또한 중요하고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무리는 힘을 내니까, 그렇지만 때론 무리는 개인에게, 심지어 소속된 개인에게조차 폭력적이기도 하니까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 맞지 않겠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는 그래서 노프라이드파티에 갔던 친구들은 그런 부분에서 많이 만족을 했었다 라는 평을 했고, 나도 기회가 된다면 역시 가보고 싶다.

생각보다 외국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것도 흥미로웠고 대학교 퀴어 동아리들 여러 개가 같이 부스를 낸 것도 흥미로웠고, 흡연부스가 있었던 것이 고마웠고, 생각보다 재밌고, 잘 놀고 왔다! 정도로 끝내기엔 아쉽지만, 딱 그런 느낌이었다.

내년에도 무사히 열리고 무사히 참가해보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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