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메일스를 읽고

이 책을 이렇게 이런 시간에 만나게 된 것은 무척이나 행운이다.

발레리 솔라니스의 SCUM 선언문을 안드레아 롱 추가 보고 분석한 도발적인 책이다. 여기서 SCUM에 대해 발레리는 남성거세 결사단체(Society for Cutting Up Men) 의 약자라고 주장했다가 이후 부정했는데 무엇이 되었든 크게 상관 없는 일이다.

이 책을 이렇게 이런 시간에 만나게 되는 것이 행운이라고 하는 이유는 태어난 성별로 패싱되며 살아가길 결정한 논바이너리인 나에게 무척이나 귀감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여자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그 사실을 싫어한다. 로 시작하는 이 책을 모두 이해하는 것은 어려웠다. 아무래도 내가 인문학적이나 그런 지식이 부족해서겠지. 그럼에도 도발적이고, 투사적이며, 어떤 당사자성에 공감할 수 있는 글들의 나열을 보며, 그 자체만으로도 무척이나 아름답고, 존경스러운 책이었다. 그리고 난 이 책을 평생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왜냐하면 난 발레리도 안드레아 롱 추도 아니므로

개인적으로 공감하고 기억에 남는 구절들 몇 개를 적어보고자 한다.

여자임은 당신을 희생시켜 다른 누군가가 당신 대신 욕망하게 하는 것이다. 여자라는 것은 가끔은 아프지만 늘 자신에게 해롭다는 뜻이다. 그 궁극적인 대가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죽음이다.”

욕망은 결핍을 함의한다. 욕구는 욕구를 함의한다. 나 같은 여성을 성전환자로 만드는 것은 정체성이 아니라 욕망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일은 트랜지션의 상당 부분이 위시리스트에서 벌어지는 것임을 인정하는 일, 끝내 가슴이 생기지 않을 수도, 결국 목소리가 패싱이 되지 않을 수도, 부모가 다시는 전화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일이다.”

페미니즘은 여성혐오에 반대하는 바로 그만큼 여성혐오를 표출한다.”

“트랜스 여성이 여성이었다면, 여성이 되지 않을 분별력이 있었을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당신 대신 당신의 삶을 살게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젠더의 핵심 아닌가?”

“나는 여자다. 그리고 당신, 친애하는 독자여, 그대도 여자다. 당신이 아니라 해도, 아니라면 더더욱. 환영한다. 유감이다.”

무엇을 더 적을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냥 그 자체만으로 도발적이며, 생각의 고리를 해체 시키고, 동시에 당사자라면 공감하게 들을 것이고, 퀴어 운동가들이나, 퀴어 커뮤니티에 오래 있었던 사람이라면 발레리의 SCUM 선언문이나 발언에 대해 기묘한 결론에 이르는 안드레아 롱 추에게 환호와 공감을 보낼 것이다. 그것이 오랫동안 퀴어 커뮤니티에서 절대적인 악으로 표방되고, 그 사이에 낑겨서 곤란을 여러번 겪어본 사람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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