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시 4 후기

잘 되는덴 뭔가 다 이유가 있지 않겠냐?

나에겐 범죄도시와 범죄와의 전쟁을 헷갈려 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 때 대충 ‘느그 서장 남천동 살지?’ 는 범죄와의 전쟁이고 ‘와아 깡패다’ 하는 건 범죄도시 였던 걸로 어렴풋이 나누었다. 세월이 흘러 마침내 두 영화를 모두 보았다. 범죄와의 전쟁은 어떤 가부장적 폭력성에 대한 버튼을 눌렀고, 그런 것치고는 너무 잘 만들어서 별점은 2.5 로 주었던 걸로 기억한다. 범죄도시는 딱히 인상 깊진 않았지만 오락적 스릴러라서 별점 3점을 주었던 걸로 기억한다. 사실 범죄와의 전쟁은 너무 잘 만든 한국 영화라서 0.5 점이 깎였다. 그리고 또 시간은 흘러 범죄도시 4 가 나왔다.

잘하던 국밥집 4호점

확실한 건 범죄도시는 좋아하는 영화의 결은 아니다. 나쁜 놈들이 나오고, 마동석이 맡은 마 형사는 그를 체포한다. 범죄도시 2, 3는 본 적 없지만 적당히 웃긴 조연이 함께 한다. 어떤 범죄 조직이 나오든 어떤 상황이 나오든 이미 범죄도시 1을 봤다면, 아니면 이런 영화에 익숙하다면 기대하는 것은 비슷할 것이다. 결국 영화에서의 선과 정의의 승리를 기대한다.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았지만 이 시리즈가 4까지 나온게 신기하고, 5 또한 예정 되어 있다는 것도 신기하다. 사람들에게 선호 받는 사이다 서사라 그런 걸까? 시간 때우기 좋아서 그런 걸까? 어쩌면 둘다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어쨌든 영화를 보고 싶어하고, 마침 극장에선 범죄도시4를 거의 10분에 한 번씩 상영하고, 마침 가볍게 보기도 좋고, 마침 경쾌한 액션까지 있다. 이건 마치 부산 돼지국밥처럼 상업적으로 실패하는게 더 힘들 것이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지도 2-3년이 되어서 그런가 마동석의 액션은 특히 더 경쾌했다. 물리적인 충돌에 대한 효과음은 확실히 빠방하게 들어가있었다. 마치 격투게임을 보는 것처럼 타격감이 제법 훌륭했다.

동시에 마동석이라는 배우의 인기에 대해서도 실감했으며 인기가 있는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마동석은 큰 덩치와 외모 자체를 이미지로 만든 배우이자 동시에 영화 밖에서는 친근함을 어필한 갭모에가 인기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연기에 있어서 잘 못하는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소화할 뿐더러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습 마저 적절히 보여주니 인기가 좋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미지라는 건 소비될 수록 닳기 마련인데 범죄도시라는 영화 시리즈가 끝났을 때의 마동석 배우의 이후 커리어나 이미지들이 걱정되면서도 기대가 된다.

그래서 영화는요?

영화의 내용을 간략하게 이야기하자면 온라인 도박장과 연계되어 있는 범죄조직을 잡는 마석도의 이야기이다. 베트남에 출장 갔을 때 한번 들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프로그래머를 납치-감금해서 온라인 도박 사이트 제작, 유지보수하게 한다는 이야기 말이다. 영화 속 백창기를 보면서 한국에서도 특수부대 같은 곳을 전역해서 PMC나 블랙으로 일한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었던 기억도 나고, 요새는 인터넷 방송인 소속사를 이용해 돈세탁을 한다는 이야기도 생각이 났다. 원래 음지의 일은 항상 소문으로 밖에 접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IT를 전공했다보니 아는 이야기들이 나와서 흥미롭게 보기는 했다. 네트워크 스위치들이나 불법사이트들을 보면서 ‘오 아는 거 나왔다, 신기하다’ 의 느낌이었다. 영화 불법 도박 사이트에서 하는 도박이 뭐지 하고 찾아보니 바카라인 것 같았다. 바카라의 룰은 뭔가 했더니 플레잉 카드에서의 섯다였다. 그걸 보고 나니 ‘이거 도파민 샤워를 엄청 하게 생긴 룰이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물론 그런 게임들을 좋아하긴 한다. 마작, 포커(텍사스홀덤) 처럼 어떤 불확실성이 있는 게임들을 좋아한다. 사실 본질적으로 게임은 그런 불확실성이 있어야 사람들이 재밌게 할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돈을 걸게 되면 느낌이 다르다. 돈은 삶을 영위하는 수단이자 거래 수단으로 생각해야지 목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돈을 걸게 되면 돈은 게임을 하는 목적이 되어 버린다. 끊임없는 도파민 샤워와 당연하게도 잃어가는 현금 사이에서 인간의 정신은 그것들을 버티기에 너무 나약하다.

영화 스토리적으로 평가할 부분은 많이 없는 것 같다.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당연히 나와야할 곳에 당연히 장면이 나오고 그저 쭈욱 흘러가는 영화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가볍게 볼 수 있었고, 장이수가 그 역할을 너무 무겁지 않게 잘 이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백창기의 등근육은 맛집이었고, 젊은 아이티 천재는 신뢰하기 힘들다는 어떤 편견을 제법 웃으며 봤다.

일은 기술이 하는게 아니다. 사람과 돈이 한다. 내가 봤던 젊은 아이티 천재들은 자신의 기술이 혁신을 일으키고 세상을 바꿀거라고 생각했으며 생각보다 사람과의 신뢰를 쉽게 저버렸고, 자신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비난을 쉽게 하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다. 영화에서도 장동철이 백창기와의 약속을 지켰더라면 일련의 비극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영화에서 백창기가 그대로 필리핀의 마닐라로 갔으면 어떻게 됐을까? 서버 데이터는 있으니 뭐가 됐든 다시 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자기 온라인 카지노가 다 털린 걸 알았을까? 이미 경찰 추적이 턱 밑까지 온 상황에서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관 없었을 것이다. 이미 가지고 있는 현금과 서버 데이터로 충분히 다시 시작할 수 있고, 돈세탁 할 수 있는 수단만 찾으면 크게 문제 없이 재개할 수 있는 사업이다. 돈세탁을 위해 한국에 연줄을 둘 필요도 없이 코인 같은 걸로 돈세탁을 해도 되고, 어떤 경로로든 방법을 찾아서 했을 것이다. 영화 속이라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마석도 형사에게도 많은 운이 함께 했음을 실감해본다. 만약 비행기 내부라서 흉기 소지가 되지 않아 급하게 백창기가 무기를 급조했기에 다행이었지 칼을 들었으면 마석도 형사는 졌을지도 모른다는 마동석의 인터뷰가 있었다.

그럭저럭 재밌게 봤고, 그럭저럭 지루하지 않았다. 그럭저럭 좋았고, 액션은 훌륭했다. 범죄도시 시리즈가 그러하듯 상업적으로 잘 만든 영화였다.

+ 추신 : 범죄도시 기획 자체를 마동석이 한 줄은 몰랐다. 제작, 기획, 각색, 주연 모두 마동석이 하는 영화가 범죄도시 시리즈였다는 게 제법 놀라웠고, 앞으로의 귀추를 조금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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