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과 영광 사이에서

인간은 누구나 고민과 질투를 가지고 살아간다.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마음이 가고, 그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배운다. 이런 관계 형성을 위해 소셜미디어를 제법 잘 활용한 편이었다. 나는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을 많이 질투하고 많이 배우며, 동시에 어떤 커리어적으로 우세에 있거나 연봉이 나에 비해 터무니없이 많은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필연적으로 인간은 살면서 생존의 기술로서 어떤 스킬이나 노하우를 쌓게 된다. 일용직부터 전문직까지 자신이 일하는 분야에 있어서 분명히 일해야만 알 수 있는 노하우라는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로 전공이라는 말과 그것이 주는 지위는 굉장히 자만적이며 동시에 오만하게 만든다. 사실 모든 것은 익숙함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노하우는 익숙함의 문제이며 숙련의 문제라면 우리는 어떤 것도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생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내가 어떤 것에 익숙하더라도, 그런 일을 하는 다른 집단에 가게 되면 그 집단의 규칙에 따라야 한다. 모든 집단은 레거시라고 부를만한 과거의 이력들이 있고, 그 과거의 이력들은 그 집단의 구성원들이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들이다. 온보딩은 이것을 익힘과 동시에 익숙하게 만드는 절차이다. 온보딩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럽고 시끄럽다. 그게 근데 스타트업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적용되었으면 한다. 학교의 역할은 그런 것이겠지만, 세상엔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라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 사람도 존재하는 법이며, 생각보다 세상은 그 사람들에게 차가운 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엄밀하게 남이지만, 나이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아프기 때문이고, 내가 인터넷 세상에 많은 염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원래도 인터넷은 시끄러웠지만, 나에게는 더더욱 시끄럽게 느끼며 동시에 현실의 위험으로 다가왔다. 소셜과 현실의 경계는 점점 흐려지고 있으며, 나는 그렇기에 더욱 현물과 눈에 보이는 현실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내 피부에 느껴지는 강렬한 태양과 시원한 파도는 거짓일 수 없지만, 어떤 IDC 안에 있는 전자 쪼가리로 이루어진 데이터베이스는 가짜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것 또한 진실로 가짜는 아니다. 그 데이터를 봇이 만든게 아니라면, 봇이 만들었다고 할지라도 어쨌든 그것들은 전자 같은 것들로 저장된 진짜다. 소셜과 현실도 모호하고 소셜 조차 가짜가 아니라면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진짜라고 생각해야할까?나조차도 가짜가 아닐 수 있을까? 그렇다면 사실 우리는 별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필요가 없는게 아닐까? 사실 내가 인터넷을 하며 오프라인에서 만났던 사람들 조차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할 수 없는 시대인데 이미 그런게 중요할까?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할까?

우리는 결국 무엇도 믿을 수 없는 시대에 그저 나약한 개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기술과 진실보다는 그저 여론전과 마케팅의 승리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어쩌면 이것은 그냥 온 인간세계에 통틀어 원래 그러하였다 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현실을, 건강을, 내가 지금 해야할 무언가를 열심히 하기로 했다. 무엇도 믿을 수 없다면, 반대로 모든 걸 믿는거다. 반대로 내가 눈 앞에 처리해야할 많은 것들을 믿으며 사는 거다. 결국 모든 기술과 돈벌이가 숙련도의 문제라면 모든 삶과 결정은 믿음의 문제일 것이다.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결정하기엔 시야가 좁은 존재이다. 과학은 절대적이지 않으며, 이성 또한 절대적이지 않으므로

언젠가 나는 인문학 책도 좀 읽고 뭐 프로그래밍도 좀 배우고, 뭐 영화도 보고 뭐 그냥 하고 싶었던 많은 일들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에 언젠가 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 거였다. 내일 해야지 하면 내일엔 다시 오늘이 되어 내일 해야지 가 되므로

마침내 나는 오래전부터 고민하던 일을 할 때가 마침 온 것이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게임을 하고, 현생을 즐기고,
마침내 그리고 마침내 태양과 자연에 감탄하며 나를 토닥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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