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시간
어느덧 퇴사가 5영업일 남은 상황입니다. 저는 그리고 오늘 28시간 깨어 있었고, 그 중 20시간 정도 일했습니다.
제가 일을 너무 사랑하는 것은 여기 계신 대부분이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만은 일을 오랜 시간 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저는 그럴만한 직무적 사건으로 인해 그랬을 뿐, 절대 예정된 일이 아니었음을 미리 밝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제 노동에 대해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제 삶에 노동이 유감스럽게도 없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옛말로는 굶어 죽을 팔자는 아니다 라는 말을 하는데 생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질지도 모릅니다.
일에 대한 정의를 해보자면 무척이나 다양한 정의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정의는 힘을 가해 물체를 움직이는 것이고, 여기서 이야기 하는 정의는 용역을 제공하여 급여를 받는 행위를 뜻합니다.
이번 회사가 다른 회사와 다른 점은 어른이 되어간다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른의 정의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보편적인 정의로 말미암아 쓴다면 책임을 지는 사람이고, 제가 좋아하는 어른의 모습은 울면서도 설거지를 하는 사람입니다.
설거지는 그 특성상 시간이 지날 수록 난이도가 높아지지만 설거지 수요가 발생하는 시점이 명확하여 막상 하려고 하면 귀찮아지는 일입니다. 이를테면 청소나 빨래는 적당히 근무하지 않는 날에 처리할 수 있지만 설거지는 근무하지 않는 날에 하는 것이 매우 권장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울고 있다는 것은 무언가 사건이 있었다는 뜻이고, 사건이 있음에도 해야할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라고 스스로 정의하였습니다.
그 말인 즉슨 이번 회사에서 일하면서 저는 해야할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라고 느끼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더불어 일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는데 그 중 몇 가지를 골라 적어보려고 합니다.
정확히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기억하기 어려우나 1에서 2로 갈 때는 2배지만 2에서 3으로 갈때는 1.5배이고 그게 차이가 나서 20에서 21로 갈때는 무척이나 작은 배율을 가지게 됩니다. 제가 제 경력에 대해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되었으며 더이상 제 경력 연수에 대해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저는 그동안 엔지니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만은 주변의 일부가, 그리고 저의 부모님이 그저 직장인이다 라는 말을 하는 것을 계기로 저 또한 별로 제 일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인이라고 이야기하게 될 것 같습니다.
정말 재밌는 점은 앞서 언급한 일한 연수와 제 직무는 그동안 저를 지키는 보호막이었다는 점이고, 그것이 대부분의 경우에는 효과적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상대방도 그저 어린 저를 너그러히 자신을 혹은 타인을 혹은 저를 납득과 존중하기 위해 해당 논리와 자부심을 존중해주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살아보니 일한 연수 치고는 그렇게 일을 함에 있어서 적절한 모습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렇게 일을 할 수 있음에는 제가 새로운 시도를 할 때 저의 미래에 배팅하였던 선의 있는 어른이 있었음을 어림짐작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일에서 만났단 담당자, 선임, 이사 등등의 사람들이 모두 착하고 선하고 나랑 잘 맞았다 라는 뜻이 아니라 최대한 선해 하려고 노력하였음을 마침내 이해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엔지니어라고 자기 소개를 하고 싶지 않은 사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무엇이 엔지니어링이냐 라는 관점과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하느냐 라는 관점에서 풀어볼 수 있습니다.
엔지니어링이란 통상적으로 한국에서의 연구직과 가깝고, 적정하고 고도의 기술을 가지고 새로운 무언가를 연구하는 일 이라고 별로 엄밀하지 않은 정의로 풀어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하느냐 라고 한다면 저는 고객과 판매자 사이에서 지원을 해주는 서비스직에 가까우며 단지 기술은 그 수단이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우나 적어도 제가 해왔던 일은 공학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여러 분야를 해왔을때 그것이 개인의 고도의 지식과 학위를 요구하는 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며, 저와 맞닿아 있는 사람들의 직무 또한 비슷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엔지니어링이이 고도의 지식을 가지고 연구-개발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을 드렸고 나는 별로 그런 일을 하지 않고 있다 라는 요지로 설명을 하였는데 생각해보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라벨은 붙이기 나름이고, 라벨은 편리함 때문에 사용하는거지 그 정의에 정확하게 들어맞을 수 없다 라는 사실을 생각해본다면 제가 엔지니어라는 라벨을 떼겠다 라는 것이 이토록 오래 걸린 것이 스스로에게 신기합니다.
논바이너리 부치 이하 생략 이런 퀴어 라벨을 어느 순간부터 별로 쓰지 않게 되었다 라고 종종 이야기 했던 기억이 났는데 그 때와 비슷하게 엔지니어 역시도 별로 그런 라벨을 쓰고 싶지 않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저에는 경력 연수 조차 그런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동안의 여정은 지속적으로 라벨링을 제거하는 과정의 연속이었고, 앞으로도 그러할텐데 저는 그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스스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몇 가지 라벨이 낙엽처럼 스스로 떨어지고 나서 거름이 되고 꽃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라벨들이 꽃이 되고 나서 좋았던 점은 제가 꽃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꽃이 되니 나무에 매달려 있을 때보다 소속감은 없지만 조금 더 가볍고 평화로워졌습니다. 가장 크게 느끼는 건 제가 그 라벨과 연결된 그룹들에 대해서 수용의 폭이 커지고 단정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물론 인간군상이 비슷하니 일하는 모습도 비슷할거고 세부적인 디테일의 차이는 있겠지만 고만고만할 거라고 어림짐작으로 추정을 해봅니다. 그것이 단정에사 추정으로 내려온 것이 이번에 엔지니어라는 라벨이 떨어지면서 느끼게 된 점입니다.
또 그렇게 길고 긴 한 챕터가 끝나고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어 간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서비스 장애처리로 28시간을 깨어있었고, 20시간 정도를 일했지만 별로 화가 나지도, 억울하지도 않고, 그냥 아 퇴사하기 힘드네, 피곤하네, 금요일이네로 마무리된 이상한 사건을 기록하다 드는 생각들을 남겨보았습니다.
나현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