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과 기술이 그렇게 중요하더냐
이직했습니다! 지금 회사는 하드웨어 위주의 일을 하게 되어서 생각보다 컴퓨터 과학 이론과 기술을 많이 다루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회사에서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고민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제가 퇴사할 때 기술은 배울만큼 배웠다는 생각이 들어서 새로운 기술을 익히기 위해 퇴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재직했던 회사들은 비즈니스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나름대로의 경쟁력을 가지고 계속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제가 알지 못했던 경쟁력이 있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가 생각하는 “기술”이 무엇인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기능과 기술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능과 기술을 나누는 경계는 현장과 설계를 기준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기술 분야의 최정점 자격증은 기능장과 기술사가 있습니다. 둘 중 하나만 있는 과목도 있기 때문에 둘다 있는 전기를 예를 들어 비교하겠습니다. 전기 기능장은 전기 기능사처럼 실기에서 전기 배관을 설계도를 보고 만듭니다. 반면 전기 기술사의 경우 전기 기사처럼 주관식 필답형을 실기로 봅니다. 이처럼 기능과 기술은 엄밀하게 보자면 차이가 있으며 기술을 하기 위해서는 기능에 비해 많은 이론적 지식이 필요합니다.
전기 분야에서 기능과 기술의 차이를 살펴보겠습니다. 현장에서 전기 공사를 하는 일은 기능적인 일입니다. 반면 설계 및 감리 등을 하며 공사계획을 잡고, 적절하게 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기술의 영역에 들어갑니다. 그렇다면 기계 분야에서는 어떠한지 살펴보겠습니다. 현장에서 공작기계 및 공구를 이용하여 쇠를 가공하는 것은 기능에 해당합니다. 반면에 설계 및 감리를 하는 것은 역시 기술에 해당합니다.
IT에서도 그러한지 살펴보겠습니다. IT에서의 한 사이클을 살펴보겠습니다. 새로운 시스템 도입 계획 수립-인프라 설계-인프라 장비 발주 및 설치, 셋팅-초기 프로그래밍 및 버그 수정-운영 사이클을 수행하게 됩니다. 여기 운영이라고 통칭한 부분에는 인프라적 운영과 프로그래밍적 운영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기능과 기술을 구분하려고 하였습니다 만은 크게 나누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저는 인프라 하드웨어 엔지니어 입니다. 인프라 장비 발주 및 설치, 셋팅은 기능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객이 운영하다가 장애가 생기면 제조사와 고객 사이에서 장애요소를 특정하고 해결하는 부분이 필요한데 이때 컴퓨터 과학의 이론적인 요소들이 많이 요구됩니다. IT의 꽃인 프로그래밍도 비슷합니다. 프로그래머도 처음엔 문법과 사용법에 대한 숙련이 필요하고 이후에 최적화 및 트러블 슈팅을 위해 컴퓨터 과학의 이론적인 요소들이 많이 요구됩니다.
그렇다면 제가 미처 깨닫지 못하였지만 전통적인 공학 분야도 기능과 기술을 나누기 어려운지 확인해보겠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기능과 기술을 나누고 있지만 IT와 비슷하게 일이 숙련됨에 따라 기술자로 전직할 수 있습니다. 전기 분야는 현장에서 일하다가 설계직이나 감리로 가는 경우가 많고, 기계 분야 또한 비슷합니다. 상대적으로 IT와 다른 점은 기능만 충실하게 수행하였을 때 뻗어갈 수 있는 가짓수가 많다는 점입니다. 전통적인 공학은 IT와 비교해서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해서 사업을 하는 비율이 높습니다. 반면 IT는 자기 사업이나 프리랜서를 하기 위해서는 기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제가 지금 회사에서 기술을 배우지 못하는 부분이 아쉽고, 회사에서 무엇을 배워야할지 모르겠다고 하는 부분을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리눅스와 OS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쪽 분야를 좀 더 깊게 다루어보고 싶었기 때문에 지금 회사에 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하드웨어 작업이 주 이며, 이론적인 부분들을 많이 요구하지 않는다 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항상 퇴사할 쯤 되면 이론적인 것은 다 배웠고, 내가 더 배울 건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을 기억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퇴사한 회사들은 비즈니스를 여전히 지속하고 있었고, 그 뜻은 시장에서 나름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들로 미루어보아 제가 기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 기술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비해 매우 좁은 영역만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기술과 기능의 경계가 사실은 모호하며 비즈니스를 수행함에 있어서 크게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기능과 기술은 상호보완적인 관계이며, 지금 회사 역시 트러블슈팅 에서 이론과 기술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기술을 왜 배워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생존주의적 압박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저는 이론과 경험이 만나는 지점에서 일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제가 일하고 경험했던 환경에서는 상대적으로 현장은 존중되지 않았고, 더 나아가 현장직을 홀대하거나 무시하는 일도 보았습니다. 현장은 부가가치를 실제로 창출하고, 생산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존중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현장직은 고강도 저임금 노동을 하게 됩니다. 저는 그런 경험 속에서 앞으로 해야할 일이 기능이 아니라 기술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고, 제가 생각했을 때 IT에서의 기술인 프로그래밍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프로그래밍이 현업에서 기술적인 요소보다는 기능적인 요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인프라에서 트러블 슈팅을 하면서 인프라도 기술적인 요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인프라 엔지니어를 계속 하기로 하였습니다.
잘 알지 못하지만 결국 기능과 기술은 현장과 이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분야나 비슷한 일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사무직이라고 뭉뚱그려지는 영업, 총무, 세무, 회계, 행정 모두 각자의 이론과 현장 속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균형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겁니다. 모두가 그렇다면 사실 제가 생각한 이론과 기술이라는 것은 제가 현장이 더 익숙하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이상향이었으며, 동경과 질투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압니다. 현장과 기능은 회사에서 익히고, 이론과 기술은 대학교와 회사에서 요구하는 자격증으로 익히면서 부족한 부분들은 채우고, 잘하는 부분들은 발전시키면서 저의 길을 가면 됩니다. 이 글을 쓰면서 오래 전에 들었던 한 마디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돕니다. ‘일은 하면 느는 것이고, 사람들과 잘 지내야한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적에는 그게 무슨 이야기인가 했습니다. 하지만 한 해 한 해 가면서 그 한 마디가 정말 맞았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일을 하면서 처음에는 수련을 필요로 하고, 숙련된 다음에는 이론을 채우면서 나아갑니다. 숙련만 되어도 일의 대부분의 경우를 처리할 수 있습니다. 이론이 필요한 순간은 숙련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부분을 해결할 때 필요합니다. 하지만 숙련이 된 사람이라면 이론을 채우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숙련과 기술을 수행할 때 정보와 진로의 방향은 혼자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일은 혼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은 하면 느는 것이고, 사람들과 잘 지내야한다’ 라는 말로 압축됩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각자의 분야에서 비슷한 일들과 비슷한 고민들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각자의 선택들과 치열함을 응원해봅니다.
나현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