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을 꼽자면 개발자, 프로그래머를 보통 꼽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엔 IT 일을 하는 사람이 개발자만 있는 건 아니다. 개발자는 서비스 로직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 서비스가 돌아가기 위한 환경을 구축, 운영, 유지보수 하는 것이 시싀템 엔지니어의 일이다.

시스템 엔지니어는 크게 네트워크, 서버, DB 로 나뉜다. 네트워크는 네트워크 장비를 다루고, 서버 엔지니어는 서버 OS부터 서비스까지 다양하게 다룬다. DB는 모든 서비스의 원천이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다루는 엔지니어가 있다.

시스템 엔지니어 현실이라고 검색하면 많은 글이 나온다. 주로 시스템 엔지니어를 비추천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글들이 대다수다. 새벽작업, 교대근무, 출장, 낮은 연봉이 주된 이유다.

그렇다면 나는 왜 프로그래밍을 하지 않고 서버 엔지니어를 하는 중인가?

그건 그곳에 서버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타쿠 전문용어로 ‘덕통사고’ 당해버렸다. 서버실에 들어가면 서버 팬이 나를 반겨준다. 그 팬 소리가 나를 설레게 한다. 하나의 시스템은 여러 개의 시스템의 연동으로 이루어진다. 이 시스템들이 머릿속에서 트리구조로 정리되면서 내 영역이 넓어지는 것이 짜릿하다. 낚시에서 손맛이 이런 걸까? 아름다운 구조는 치열한 고민과 최적화의 결과이다. 그 구조가 정갈하게 정리되면서 머릿속에 들어오는 경험은 예술적이다.

새벽작업, 교대근무, 출장, 낮은 연봉은 나에게 큰 문제가 아니다. 반대로 서버 엔지니어의 장점은 경기를 타지 않고, 정년이 길다. 재직한 회사의 기술적 히스토리와 성향을 알고 있는 사람은 쉽게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이 아니다. 지루하더라도 시간을 쌓아 만들어가는 장점이다.

프로그래머라고 통칭해서 부르지만 프로그래머들도 자기가 일하는 업종에 따라 다르다. 시스템 구축이나 시스템 유지보수는 일의 성격이 비슷하다. 하지만 스타트업이나 서비스 업종에서 IT 업무가 가지는 성격은 다르다. 스타트업은 폭발적으로 매출을 늘리고, 사용자 수가 성장한다. 이들은 지금 당장 업무에 투입이 가능한 개발자를 원하며, 그들은 젊음과 높은 연봉을 거래한다. 서비스 업종은 조금 다르다. 한국에서 자체적인 서비스를 가진 IT 기업들은 기본적으로 스타트업처럼 높은 연봉을 받는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레거시라고 부르는 지저분하고 잘 구조화되어 있지 않은 코드들 사이에서 일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시스템 구축이나 유지보수를 해서라도 프로그래밍을 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프로그래밍 문법과 사용예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일하는 방식에 차이를 잘 적응한다면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시스템 엔지니어는 다르다. 시스템 엔지니어는 크게 운영과 구축으로 나뉜다. 서비스를 개발하는 개발자가 있으면 그들을 고객으로 상대하고 시스템 운영을 담당하는 시스템 엔지니어가 있고, 그 시스템의 일부인 장비를 구축, 유지보수하는 파트너사 시스템 엔지니어가 있다. 따라서 시스템 엔지니어로 다른 회사에 이직한다면 또 다른 파트너사나 운영사로 이직하게 된다. 운영사는 대기업 계열사거나 파견 상주를 하는 파트너사로 크게 나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크게 다른 진로를 선택할 용기가 없다면 비슷한 일을 비슷하게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대신 더 규모가 클 수록 안정적이고, 연봉이 높으며, 그에 비례해서 문서작업이 많다.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좀 더 수직적인 환경에서 긴밀하게 협업이 필요하다. 고객들과의 소통 능력이 연차가 쌓일 수록 특히 중요하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요구되는 업무 능력은 크게 두가지이다.

첫 번째는 소통 능력이다. 고객이나 장비사 고객센터 사이를 오가며 소통을 하는 메신저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각자의 문제와 요구사항을 잘 이해해서 최대한 모두에게 이득이 가게 하는 일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배경 지식이다. 이런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입장을 잘 이해해야하고, 기술적인 문제들과 원리, 기능들을 잘 이해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배경지식이 많이 필요하며, 일이 ‘Easy to Start, Master to Hard’ 의 형태를 띄게 된다.

어려워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게 전부다. 나머지는 건강을 챙기고, 돈을 모으면서 살면 된다.

내 주변엔 프로그래머가 많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은 더 이질적으로 보인다. 프로그래머들은 상대적으로 본인의 성장과 커리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는 이걸 개발자적 마인드라고 부르는데 반면 내가 하는 일은 그냥 직장인 같다. 그냥 일이 있으면 하고, 뭔가 알아야하면 물어물어 배우고, 성장과 높은 연봉과 건강을 트레이드하지 않아도 된다. 인프라라는게 안정적이어야하듯 우리도 안정적으로 일이 돌아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공부를 안하고 있진 않다.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건 내가 성장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처음에 기술했듯 내가 그런 지식들을 구체화하고 구조화하는 것이 재밌기 때문이다. 내가 배운 것을 직접적으로 업무에 사용해본 경험은 의외로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있다. 그건 나에게 흥분감을 주기 때문이다. 문명의 명대사를 빌려 이 흥분감을 설명해본다.

수면 아래 생명의 첫 탄생부터… 석기 시대의 커다란 짐승들과… 처음으로 직립보행하는 인류의 시초까치, 먼 여정을 거쳤습니다. 문명의 요람부터 별을 향한 탐험까지, 이제부터 당신의 가장 위대한 임무가 시작됩니다. 문명 6 오프닝 대사 중

전자의 발견 부터… 근대 시대의 진공관과 현대 시대의 트랜스터까지 먼 여정을 거쳤습니다. 에니악부터 최첨단 클러스터까지, 이부터 당신의 가장 위대한 임무가 시작됩니다.

이게 나와 서버 엔지니어라는 일의 전부다. 개발자가 되기 위해 방황했던 시간도, 대학에서 이게 뭐지 하며 머리를 쥐어뜯는 시간도, 내가 과연 커리어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고민했던 시간도 결국 모두 내껏이 되었다. 방황한 시간만큼 내 땅이 된다. 난 정말 그렇게 되었다. 앞으로는 서버 엔지니어를 넘어 TA가 되어 다양하고 미션크리티컬한 환경에서 인프라 설계, 구축을 해보는 꿈을 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