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글
불안을 흘려보내기 위해 글을 쓴다. 나에게 글이란 나의 마음을 알아차리기 위한 수단이다. 최근에 70만원으로 투자를 했다. 투자 포트폴리오는 좋았다. 하지만 카드값을 갚기 위해 결국 모든 자산을 매도했다. 아직 투자하기 적절한 때가 아니라는 건 안다. 나를 투자로 내몬 건 무엇에 대한 불안이었을까?
빚도 많다. 연봉의 1.5배 정도, 비상금은 없다. 나에게 가진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10년이 지나면 빚을 모두 갚으니 괜찮겠지, 어쨌든 일을 하고 있으니 괜찮겠지 하며 그저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국가 공인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굳이 국가 공인을 붙이는 이유는 마사지를 빙자한 업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복지로 제공해주는 마사지이다. 국가 공인이 아닐 수 없다. 마사지사가 근육 결도 이쁘고 적당히 크고, 운동만 하면 딱이라고 했다. 누군가에게 몸으로 칭찬 받아본 몇 안 되는 기억이다. 바디 유포리아가 생겼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첫 순간이다.
토요일에는 애인과 훌라를 하러 갔다. 훌라를 하면서 느꼈다. 내가 여체가 가지고 싶었던 이유는 아름다운 몸선을 가지고 싶어서 였다. 하지만 그건 여체가 된다고 생기는게 아니었다. 나는 충분히 아름답다.
불안하다. 삶의 파도가 나를 때린다. 일, 빚, 본가, 그외 etc. 삶이 톱니바퀴처럼 반복된다. 비슷한 상황도 반복된다. 하지만 나는 매번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있다. 그것은 믿음의 영역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믿어야하고, 일을 시키는 사람은 하는 사람을 믿어야하는 것처럼, 삶을 살아내는 사람은 스스로를 믿어야한다.
불안해서 투자한 돈은 불안하기 때문에 팔아버린다. 나에게 지금 중요한 건 투자가 아니라 재무 건전성이다. 부채가 많고, 현금은 없으니 그게 먼저다. 나를 투자로 내몬 건 나의 불안이었다. 유지보수하는 일을 오래해봐서 안다. 유지보수는 재미없는 일이다. 눈에 보이는 성과도 없이 꾸준히 해야 제자리다.
삶이 유지보수의 연속이다. 유지보수하는 사람은 안다. 장애가 생길까봐 걱정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다. 장애는 항상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은 바다와 같다. 삶에서 파도가 칠까봐 걱정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다. 삶은 항상 파도가 친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 삶이라는 걸 보내고 있다. 해는 뜨고, 달은 차면 기우는 시간 속에서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내 삶을 유지보수 한다.
우스운 일이다. 나는 남에게는 그렇게 잘 조언하면서, 나에게는 그러지 못한다. 나이 마흔에 투자를 시작해도 괜찮을까요? 당연하죠 앞으로 못해도 20년은 더 사실텐데요 라고 말할꺼면서 나한테는 그렇게 말하기 힘들어한다.
삶에서 사랑이 전부라는 말도 이제서야 음미해볼 수 있다. 삶은 본질적으로 재미 없으니까, 사랑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거다. 너도 나도 우리도, 사랑이 꼭 로맨틱한 연인간의 사랑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혼자로 지내는 건 덧없이 괴로울 것이다. 고립된 사람은 항상 사고를 친다. 실제로 고립되어 있지 않더라도, 자기가 그렇게 느끼면 그 사람은 고립된 사람이다. 고립된 사람들이 치는 사고에 휘말려도 보고,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 보기도 하고 그 모든 여정 속에서 마침내 나는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2025년도, 인생에서도 찐하게 덥고 아름다운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메타세콰이어 나무 향과 매미 소리, 손에 들린 푸른 소다맛 아이스크림, 때마침 지나가는 마을 버스, 때마침 귀를 속삭이는 파도소리, 마침 손에 들려 있는 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