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필하지 못하니까 글을 쓰는거야
글을 쓰는 이들은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굳이 절필하지 못하고 글을 쓰는 것이다.
나에게 글은 생존일기였다. 나는 내가 살아온 역사를 스냅샷을 찍어 글로 정제하여 보여주면 누군가가 공감해주겠지, 누군가가 위로해주겠지, 내가 이렇게 살아있다는 걸 누군가는 알아봐주겠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다 모르는데 남을 어떻게 알겠느냐라는 말처럼 결국 나를 알아봐 주어야하는 건 나였음을 알게 된 순간 더이상 글을 쓸 수 없었다. 그렇게 메일링을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지 않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위해 글을 쓰지 않는 것이다. 메일링은 결국 편지라서 누군가를 위해 글을 쓰는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글을 쓰지 않는 것이다. 나를 위해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자리에 있을테니 가끔 소식을 보내주었으면 하는 욕심 아닌 욕심을 부려본다. 돌이켜보면 나는 메일링을 하면서 사실 나에게 쓰는 편지라고 생각하면서 쓰는 글들이 제일 많았고, 그게 제일 잘 썼다고 생각한 글들은 항상 그런 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보내는 글이라 솔직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힙합을 좋아하는 이유는 유려한 문장 속에 담긴 솔직한 감정들이었다는 걸 상기해본다. 내가 늘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은 그런 것들이었음을 생각해본다. 재는 잔불을 탐하고, 나는 무대인을 질투해본다. 이제 나에게 필요한 건 그런 것이 아니었음을 생각해본다. 나는 나를 생각보다 돌보지 않았고, 잘 몰랐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글을 그만 두지는 않을 것이다. LLM이 10초만에 글과 코드를 짜주는 시대에 나에게 글이 더이상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고민하는 시대에 절필하지 않고 있다. 결국 나는 나와 글을 통해 소통한다. 나는 표현이 중요한 사람이라 표현을 해야지만 정리가 된다. 그걸 그동안 말하고 다녔는데 글을 통해 스스로 소통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뿐이다.
쓴 글 중에 괜찮은 것들은 https://jamjam.nyahyun.com 올라갈 것이다. 이야기는 멈추지 않을테니까, 결국 우리는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결국 삶은 지속할테니까, 단지 단지 그뿐이다. 나에게 필요한 건 그저 잘 살아내었다는 스스로의 칭찬과 성찰이니까
삶에는 많은 순간들이 있다. 순간을 초라고 하면 하루에는 86400의 순간, 장면이 스쳐지나간다. 그 중에 기억나는 장면은 1개 ~ 5개, 최대 5분이라고 보면 1500개의 순간정도만 기억할 수 있다. 이는 약 2% 정도이다. 삶에 어떤 큰 악장이 끝나는 기분이다. 이야기가 끝나는 기분이다. 나는 나의 삶의 대부분을 내가 잘못되지 않았음을 고민하고, 실천하고, 증명하기 위해 화가 나지만 표현하지 못해 우울해지는 곳에 대부분을 썼다고 생각한다. 그 모든 것이 괜찮았음을 마침내 알아버린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나의 메일링을 받았던, 받는, 인연을 가졌던, 모든 이들이 같은 차원, 같은 하늘 아래에서 종국에는 행복하길 소망해본다. 이제는 나조차도 그 안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단지 그뿐이다.
더이상 삶을 보내는 게 억울하고 지치고, 화나고, 우울하지 않을 자신이 들었다. 상담을 그만두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괜찮아져서가 아닌 내가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사는 모든 이들에게 행운이 함께하길 바라며
The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