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한 관계
사랑하고 싶지 않아, 내게 사랑은 너무 아파서
사랑하면 바보가 되는 사람, 불꽃 속에서 살결이 감겨 나에게 안정감을 주고, 나는 비로소 외로움을 해소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쓰지만,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자극이었을 뿐, 자극이 끝나고 우리는 서로를 맞추기 위한 노력을 하려고 애쓰다가 결국 관계는 산산조각 나고, 산산조각난 마음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조용히 간직해
연애만 사랑인가? 우정도 사랑이라던데, 우정과 연애가 구분되는 점은 어디에 있을까 한참을 고민해, 결혼의 의의는 민법상 보호자라던데, 그럼 연애는 단순히 결혼을 하기 위한 과정일 뿐일까?
너, 나, 우리가 연애를 왜 하고 싶어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결혼을 왜 하고 싶은지부터 알아야하는 것 아닐까? 결혼이 가지는 의의는 민법상 보호자, 즉 국가라는 합법적인 폭력을 저지를 수 있는 권력 주체가 보장해주는 보호자, 사람은 누구나 완벽하지 않으니까, 외로우니까, 내가 다 할 수 없는 일을 도와줄 사람을 찾아 헤매고, 마침내 이 사람과는 제가 삶을 같이 살면서 서로의 외로움과 어려운 일을 보듬고 헤쳐 나가겠습니다 라는 선언
우정과 연애는 어떻게 다른 걸까? 지인, 우정, 연애, 결혼을 단순히 계층적 구조로 설명하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다 찾은 답 하나, 나 연애에, 사랑에 거는 기대가 크구나
연애에 있어서 고백은 두 사람이 서로 로맨틱한 끌림이 있다는 선언이라던데 지인에서 친구가 되고, 친구에서 애인이 되고, 그러다가 결혼한다고 하기엔 너무 많은 예외적인 상황들이 지나가고, 그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혹시 내가 로맨틱한 끌림을 오해하고 있었을지도 몰라, 자극과 긴장만이 로맨틱한 끌림이라고 오해하고 있었을지도 몰라, 친구에서 애인으로 발전한다고 하기엔, 너무 친한 친구는 애인으로 발전할 수 어려우니까
언젠가의 기억 속에서 내가 연애를 하고 싶었던 이유를 찾았는데 나는 그냥 같이 자고, 같이 먹고, 같이 놀고, 편하게 이야기할 사람을 찾고 싶은 거 였더라고
뭐야 그거 바보 같아, 하지만 대부분 사람이 연애에서 바라는 게 그거일 걸?
친구랑 다른거야? 친구랑 대부분 비슷한데 친구보다 조금 더 서로의 공간을 내어주려고 노력한다는 점이 다르지, 그게 작지만 큰 차이점을 만들어, 살결을 부딪히는 경험이나, 서로 더 격렬하게 의견을 조율하고 합의 하는 과정이 생기지
우리는 모두 거울을 필요로 해, 스스로가 스스로를 보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상을 비춰줄 존재를 찾고 있는 거야, 그게 연애고, 친구는 서로가 서로에게 자기 모습을 표현하는 존재인거지, 지인은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의 익숙한 모습과 사회적 모습을 표현하는 존재인거고, 결혼은 서로가 서로에게 부족한 모습을, 필요한 모습을 마침내 도와주는 존재가 되는 거야, 모든 게 사랑이야, 사랑이 아름답지 않니?
근데 그게 친구 – 연애- 결혼의 계층적 구조와 어떻게 달라?
달라 단순히 관계의 발전이 아니라, 개인적인 측면에서, 한번 진한 연애를 하면 사람이 바뀐다고 하잖아, 조금 성숙해지고, 나는 성숙해진다를 개인이 스스로의 모순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로 이해하는 편인데 그런 점에서 다르지
나는 사랑하고 싶지 않아
사랑은 내게 너무 아프단 말이야
사랑은 아플 수 밖에 없지
두 세계는 충돌하는 과정이 사랑이니까
충돌한 두 세계는 비가역적인 영향을 끼쳐
그래서 사랑하고 싶지 않아, 사랑은 아프니까
하지만 사랑하고 싶어
사랑하지 않으면 언제 누군가를 조수석에 태우고 여행을 가보겠어,
언제 그렇게 남을 신경 쓰겠어,
언제 그렇게 무리해서라도 돈과 시간을 써보겠어
언제 그렇게 응원 받겠어
언제 그렇게 사랑하겠어
그런데 불쑥 들어온 마음의 소리 하나
‘너는 너를 사랑하고 있니?’
너는 너를 사랑하고 있니?, 너는 너로 살아가고 있니?
너는 너로 살아야 해, 그래야 사랑할 수 있어, 그래야 두 세계가 충돌할 때 네가 깨지지 않을 수 있어, 너는 항상 충돌한 두 세계에서 항상 수용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소진되었잖아, 너의 결핍, 외로움을 받아줄 사람을 찾아 헤매다가 거절하지 못한 채
결혼의 본질은 ‘내가 맞아 이자식아!’ 하는 사람 사이의 치열한 합의와 조율일지도 몰라
연애의 본질은 ‘내가 맞아 이자식아!’ 하는 사람의 치열한 충돌일지도 모르겠네
그럼 우정의 본질은 ‘난 이렇게 생각해’ 하는 사람들의 연결일거야
그러니까 스스로를 애정해야 해, 너는 너로 살고 있니?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하는 판결이 만드는 정의가 스스로를 소진 시키는 불우함이 스스로를 가두고 결국 모든 관계에서 나를 벼랑으로 밀어내
긴 바테이블, 긴 의자, 짧은 사람과 짧은 잔, 너와 내가 앉아 하는 대화, 앞에서는 바텐더가 쉐이커를 흔들고, 뒤에서는 손님들이 대화를 해
‘언젠가 너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들었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잖아? 이번엔 그 사람의 무엇이 부럽니?’
‘그래? 참 소나무 취향이네, 그럼 너는 너로 살고 있니?’
‘그래 물론 너에게도 네가 그 사람에게 부러워했던 것들을 가지고 있을거야, 사람은 자기에게 아예 없는 것은 부러워하지 않고, 무덤덤하거나 무서워하니까’
‘저런 술은 너무 많이 마시지 말아, 집에는 들어가야지’
‘다음에 만날 땐 지금보다 좀 더 아름다웠으면 좋겠네’
‘유연함을 위해선 중심이 필요해, 그 중심은 나일 필요가 있어, 내가 말하는 아름다움이 화려함이 아닌 거 알지? 음식에 향신료만 있으면 맛있게 먹기 힘들어’
‘사랑해, 집에 잘 들어가’
담배 연기와 함께 날라가 버린 마음의 소리와 함께 생각난 장면, 중년 남성들은 자신의 마음과 너무 벽을 쌓은 나머지 술을 먹지 않으면 화해할 수 없는 거구나, 바보 같아
후후 그치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나 역시도 바보 같네
사랑해, 도망 갔던 날들을 안녕하고, 안녕하고 씩씩하게 돌아오자
결핍, 불안, 외로움, 질투, 분노, 우울, 자기소진, 자기판결, 슬픔
부드러움, 설렘, 온기, 안정, 아름다움, 호기심, 여유
모든 것이 담긴 무거운 가방을 매고 집에 가기 위해 택시를 부른다
사실 아무것도 없는 가방을 매고
집에 가는 택시 안에서 보라색 셔츠와 청바지는 너덜너덜한 흰색 원피스와 빳빳한 짧은 청자켓으로 바뀐다.
‘내일은 좀 맛있는 것도 요리하고 쉬어야겠어’ 하며 잠들어버린 나